나를 찾아 가는 옷, 르주

살랑이는 바람과 햇살이 마주하던 나른한 여름날, 청량한 파리의 하늘을 닮은 신진 디자이너 둘을 만났다.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제양모, 동생은 강주형. 함께 ‘르 주’를 디자인한다.

불어로 ‘르 주’, 간혹 어떤 사람은 ‘레 제’라고도 하더라. 둘 다 맞다. 발음이 쉬워 불어식과 영어식 둘 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노렸다. ‘르주(Le Je)’는 불어로 ‘자신, 자아’라는 뜻인데, 일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사전적인 단어다. 의미가 브랜드의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좋았다.

르 주는 어떻게 시작했나. 우리는 친구를 통해서 알고 지낸 사이다. 내가 의상 학교인 스튜디오 베르소를 졸업하고 여러 브랜드의 인턴을 거쳐 발망에서 3년쯤 일했을 무렵 내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주형이는 졸업 작품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나와 자주 대화했다. 우리는 다른 점도 많지만 옷을 만드는 데는 서로 배울 점도, 가고자 하는 방향성도 묘하게 잘 맞았다. 함께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고, 시험 삼아 공모전을 통해 2018 S/S 컬렉션을 선보였다. 공식적으로 한 건 그다음 시즌이고, 이번이 세 번째 컬렉션이다.

지금 작업실에 흐르고 있는 음악은 무엇인가. 드뷔시가 작곡한 ‘목신의 오후’. 이번 시즌을 대변하는 곡이다.

그럼 이번 시즌 콘셉트를 소개해달라. 정확하게 말하면 드뷔시의 이 음악을 무용가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발레로 표현한 것에서 비롯했다. 고요하고 나른한 여름날 오후 목신이 낮잠을 자다 요정을 만났는데,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지만 달콤하고 몽롱한 관능적인 여운을 남기고 떠난다. 이 선율을 따라 나른한 표정과 몸짓을 한 채 숲속을 서성이는 목신 판을 얇게 비치는 패브릭과 루스한 실루엣,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소재로 표현했다.

이번 콘셉트의 영향도 있지만 남성복에서 볼 수 있는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맞다. 이번엔 많은 부분에서 곡선의 미를 살렸다. 그렇게 느끼는 또 다른 이유 일반적인 남성복에서 사용하는 평면 재단을 하지 않았고 여성복에서 쓰는 입체 재단을 하기 때문이다. 인체의 실루엣을 따라 드러나는 곡선을 살릴 수 있다. 그리고 브랜드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남성복이라고 굳이 정의하지 않았다.
소년과 남자 사이 어디쯤 있는 것이 르 주의 모토다. 고객의 일부도 여성이다. 단, 남성복의 생명인 원단이 주는 힘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원단을 공수한다.

르 주의 시그너처 아이템은 무엇인가? 셔츠다. 앞은 일반 셔츠의 형태지만 등 부분에 여성복 드레스에 사용하는 튤을 넣어 과감한 볼륨을 연출한다. 특히 원단이 두꺼워지는 겨울 시즌의 셔츠에 볼륨이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패턴을 잘 살린 팬츠도 매 시즌 만드는 의상 중 하나다. 반면 우리의 제일 큰 마켓인 일본에서는 주로 시즌 콘셉트를 잘 살린 룩을 선호한다. 가령 이번 시즌엔 자카드 소재로 만든 의상이 그렇다.

룩북을 비롯한 ‘르 주’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돋보인다. 요즘은 매거진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종종 한다. 주로 신인 포토그래퍼들과 함께하는데 시즌 룩북 외에 우리의 생각, 방향과 콘셉트를 보여주기 좋은 것 같다.

거대한 패션 왕국인 파리에서 신인으로 어려운점은 없나? 프랑스는 자국 디자이너에겐 지원이 많고 외국인에겐 배타적인 경향이 있어 신진 디자이너가 자리 잡기 어려운 면은 있다. 물론 쟁쟁한 메종도 많고. 하지만 프랑스에는 과장되지는 않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프렌치 감성이 있다. 파리는 그것에 집중할 수 있고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서정적이고 우아함 속의 위트를 찾는 것이 ‘르 주’인데 여전히 그런 것이 잘 맞는다.

앞으로 ‘르 주’의 계획을 알려달라. 그동안은 컬렉션 기간에 쇼룸 형태의 프레스 데이를 진행해왔다. 언젠가 쇼를 하기에 앞서 다음 시즌엔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시즌이 막 끝났는데 당장 하고 싶은 건 없나? 다음 시즌을 바로 준비해야 한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생각도 많아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반짝하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조금씩 내공을 쌓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될 거다.

<나일론>에서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2020 S/S 컬렉션 피팅 이미지.

 아트 피스인 베스트와 시즌 룩들.

 영원한, 소년 그리고 나, 2019 S/S 컬렉션
‘영원한 소년(Puer Aeternus)’의 이미지.

 룩북 이미지를 액자에 넣어 장식한 파리의 아틀리에.

리넨 소재로 만든 시즌 레이블을 단 셔츠.

contributing editor lee hye won
photograoher shin chang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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