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채널 가이드

시험에도 족보가 있듯 제71회 에미상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만난 화제의 여섯 작품을 소개한다.

Emmy Awards


<킬링 이브> | Director 데이먼 토머스 

정보국 요원과 그의 상사, 사이코패스가 모두 여성인 흔치 않은 스릴러. 게다가 정보국 요원은 이제껏 그 많고 많은 수사물에서 극의 중심 인물이 된 적이 거의 없는 아시아계 배우가 연기하는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BBC 아메리카)는 태생부터 기존 수사물과 달랐다. 이 작품은 올해 초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에게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더니, 지난 9월 에미상 시상식에서는 산드라 오의 상대 역을 연기한 조디 코머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킬링 이브>가 이처럼 평단의 사랑을 받게 된 건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은 명석하고 노련한 직업 여성들, 다양한 인종 구성,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다. 오랫동안 킬러를 연구해온 여자, 그녀의 비밀스러운 취미와 수사관으로서 잠재력을 알아챈 상사, 관심을 즐기는 냉혹한 사이코패스 캐릭터는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깨부쉈을 때 어떤 새로운 즐거움이 가능한지를 알게 해준다.

< 플리백> | Director 피비 월러브리지 

올해 에미상 시상식의 ‘서프라이즈’는 아마존 드라마 <플리백>의 차지였다. 코미디 부문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의 상을 싹쓸이한 이 드라마는 <킬링 이브>와 더불어 여성 서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최근 엔터테인먼트계의 뜨거운 화두임을 증명한다. ‘더러운 몰골’이라는 뜻의 ‘플리백’은 여주인공의 처지를 일컫는 말 같다(실제로 연출자 피비 월러브리지의 가족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월러브리지가 연기한 여주인공은 되는 일 하나 없는 불운한 캐릭터. 절친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며, 운영을 맡은 카페는 파리만 날린다. 하지만 ‘플리백’은 결코 동정하지 않는다. 설령 그녀가 비호감으로 비춰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툭하면 욕 을 내뱉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며,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여자도 세상에 존재하며, 삶의 애환도 있다. 제4의 벽을 넘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플리백>의 여주인공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체르노빌> | Director 요한 렌크 

<왕좌의 게임>과 더불어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을 휩쓸며 HBO의 자존심을 드높인 웰메이드 드라마 <체르노빌>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사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를 다룬 작품이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43만 명에게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다. 원전 사고는 어째서 일어나는 건가. 사고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어야 했나. <체르노빌>은 인류 역사에 암흑으로 남아 있는 원전 참사의 면면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체르노빌 발전소 폭발 사고의 전말을 밝혀간다. 사고의 순간은 짧지만, 그것을 책임지는 시간은 영원하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현재 우리가 지닌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체르노빌>의 가장 서늘한 지점이다. 불꽃놀이를 구경하듯 원전이 폭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천진한 얼굴,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사고 현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광부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사람들의 육신을 해치는 방사능의 존재는 <체르노빌>에 스릴러의 색채를 덧입힌다.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야구소녀> | Director 최윤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신인 감독의 영화. 한국 상업 영화, 브라운관, 독립 영화를 넘나들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배우 이주영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야구소녀>라는 제목만으로는 영화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없을 터. 주인공 수인의 꿈은 단순히 ‘여자’ 야구 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남자들과 당당히 경쟁해 좋은 성적을 내는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문턱에 다다를수록 생물학적 차이로 점점 벌어지는 힘의 격차가 수인의 꿈에 걸림돌이 된다. 한때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던 수인은 자신과 상대도 되지 않던 이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두가 “안 되는 거면 빨리 포기”하라지만, 수인은 끊임없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본다. <야구소녀>는 패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한계를 알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발씩 이를 악물고 나아가는 주체적 여성의 성장담에 가깝다. 더불어 <야구소녀>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던 것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조력자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패배감에 빠지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한 걸음 도약하는 성취의 순간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쏘리 위 미스드 유> | Director 켄 로치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지인들에게 켄 로치의 신작을 볼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챙겨 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망하는 켄 로치의 영화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신작 <쏘리 위 미스드 유>는 택배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남자와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 그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선택한 택배 기사 업무는 일견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한계를 뛰어넘는 택배량과 끊임없이 울리는 호출 신호는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쏘리 위 미스드 유>가 특별한 건 일과 직장 상사에 치이는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의 애환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식을 확장해 개인의 고단함이 어떻게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이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남편의 차비를 보태느라 걸어서 출근하는 사회복지사 아내,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황폐해지는 아이들의 처지는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이 영화는 저녁이 없는 삶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엔딩 장면에 이르면 제목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Director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봉준호 감독보다 한 해 앞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요즘 들어 부쩍 명예로운 상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저 감독이 슬슬 경력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 다들 바라본다.”(웃음) 올해 부산을 직접 찾은 고레에다 감독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말이 농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커리어의 정점을 경험한 예술가들은 전작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숙명을 견뎌야 한다. 분명 고레에다도 자신이 짊어진 황금종려상의 무게를 수없이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작의 영광에 안주하거나 잠식되지 않고 모험을 떠났다.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그 결과물이다. 그의 고향인 일본을 떠나 프랑스 명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 미국 배우 에단 호크와 작업한 이 영화는 회고록을 출간한 노년의 배우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 분)를 중심으로 그의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분)와 행크(에단 호크 분) 부부 가족의 사연을 다룬다. 흥미로운 건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이국의 언어를 쓰는 배우들과 작업했음에도 여전히, 이건 지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라는 점이다. 티격태격하며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가족의 모습을 보니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25여 년간 그가 가장 가까이서 관찰했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editor park ji hyun
words chang young y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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