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이 돌아왔다

핑클이 다시 모여 무언가를 한다면, <무한도전> ‘토토가’만큼의 화제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답은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압도적으로 그러함’이다.

핑클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 중학생이었으니 나는 정확히 ‘핑클 세대’에 속한다. 물론 그때 핑클을 좋아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핑클이 음악 방송에 나올
때마다 어디 얼마나 립싱크를 잘하나 가자미눈을 하고 쏘아보던 소녀들 중 한 명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1998년 데뷔한 핑클은 실상 해체를 선언한 적은 없다. 멤버마다 회사와 계약 기간이 달리 끝나면서 개인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개인 활동 초기에는 “핑클은 해체한 것이냐”는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의 질문에 “핑클은 영원하다”라고 팬들을 향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4집 활동 종료 이후 핑클 멤버 4명이 다 모인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14년 만에 돌아온 핑클이 함께 캠핑을 떠나는 단순한 구성의 jtbc 예능 프로 <캠핑클럽>은 1회에만 시청률 4.2%로 시작해 3회까지 꾸준한 상승세에 있고, 방송 날에는 어김없이 핑클이 다녀간 캠핑장의 이름이 검색 순위에 오른다. <캠핑클럽>에서 3회까지 핑클 멤버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는 캠핑 가서 먹고 자고 수다 떠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캠핑카를 운전하며 울창한 나무 터널을 지나면서 바람을 느끼는 장면이 3분가량 아무 자막 없이 흐르고, 이효리가 아침 일찍 일어나 산비탈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성유리와 이진이 캠핑 의자에 앉아 멍 때리는 장면이 음악과 함께 반복된다. 이 예능은 전반적으로 오디오가 비어 있다. 이건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인데, 강호동이나 유재석이 주요 멤버로 출연하는 여타의 예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성이다. 가만히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성유리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뒤에서 갑자기 유재석이 나타나 “무브 무브!”를 외치며 북돋워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 정도다. <캠핑클럽>의 제작진은 조바심도 없이 쉬고 있는 핑클을 그저 내버려둔다. 1박 2일간 촬영해 70분 분량을 만드는 <무한도전>과 10시간 뛰어다녀 1시간 분량을 만드는 <런닝맨>의 속도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캠핑클럽>의 리듬은 방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 느리고, 별로 하는 일도 없고, 지난 회가 이번 회 같은 반복되는 풍경에 <캠핑클럽>의 매력이 숨어 있다. 그것을 나는 ‘시스맨스’의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 같은 드라마에서 노골적으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던 여성×여성의 러브 라인이 워맨스라면, 여성 동지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하는 것, 시스터후드를 넘어서는 시스맨스의 편안함이 <캠핑클럽>에는 존재한다. 퀴즈나 게임을 하거나, 하다못해 ‘몇 분 안에 몇 인분 요리 만들기’나 ‘몇 시까지 마을에서 뭐 구해오기’ 같은 미션조차 여기엔 없다.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서 추억담을 얘기하는 것, 최근 예능으로는 <밥블레스유>가 시스맨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능인데, 이런 시스맨스 예능의 공통점은 뒷맛이 씁쓸한 웃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남길 수 있는 자극적인 개그를 늘어놓지 않고 게임이든 토크든 더 눈에 띄려 경쟁하지 않으니 독기 빠진 청정 예능이 완성되는 것이다. <삼시세끼> 시리즈 중 최초로 여성 배우들만으로 출연진을 꾸린 <삼시세끼 산촌편> 역시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출연하는데, 이전 <삼시세끼>와 비교하면 이들이 이서진, 차승원과는 달리 ‘일’에 대한 강박이 적음을 알 수 있다. 예능의 공간을 시골과 해외로 옮겨놓은 나영석 PD는 <삼시세끼>에서 이서진에게 시즌마다 직접 만든 화덕에서 맘모스빵 구워 내기나 산양 젖을 짜서 마을 어르신에게 우유 제공하기 등의 미션을 주어 방송 분량을 짜냈다.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예능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풍경이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주말 예능의 교과서가 된 <무한도전>은 출연자를 속이고 궁지로 몰아 연쇄 반응을 만들어내고 <1박 2일>에서는 한겨울에 계곡물에 입수하고 까나리액젓을 원샷하지 않았던가. 쉬지 않고 출연자들을 뛰게 하고 경쟁시켜 캐릭터와 상황극을 만드는 것이 우리 예능의 특성, 아니 남자 예능의 교집합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여기에 굳이 ‘남자’ 예능이라고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겠다. 어차피 지난 20년간 예능에는 남자 MC 군단밖에 없었으니. <캠핑클럽>과 <삼시세끼 산촌편>처럼 모든 출연자가 여자인 예능은 흔치 않다. 뷰티 채널의 뷰티 쇼나 홈쇼핑도 예능의 영역으로 치면 그 가짓수가 조금은 상승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배우 한 명이 예능의 MC로 들어가는 경우까지 계산하면 가짓수는 더 늘어난다. 조여정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서핑을 하는 jtbc <서핑하우스>나 이민정이 스페인까지 가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콘셉트의 MBC every1<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이 그것이다. 이런 방송은 여배우를 주요 멤버로 모셔놓고 ‘우아할 줄로만 알았던 여배우에게 이런 의외성이?!’라며 그들의 털털함, 대범함, 유연함이나 스포티함, 과감성과 운전 실력 등을 치켜세운다. 자막으로 ‘톱배우 이민정 알고 보니 길도 잘 찾아!’라는 식으로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밥블레스유>로 시작해 주말에 하릴없이 <캠핑클럽>을 틀어놓고, 연이어 <삼시세끼 산촌편>을 보고 있으니 세상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이 예능들을 보면서 크게 웃으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일은 없다. 배꼽 잡는 웃음보다는 잔잔한 미소가, 그리고 나도 서른, 마흔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캠핑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이, 멀리 시골집에서 수박 한 통 잘라놓고 수다 떨고 싶은 바람이 은은하게 TV 밖으로 퍼져나간다. 시스맨스 예능이 선사하는 재미는 겨우 그 정도이고, 이미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는 그것이 의외의 위로가 된다.

words kim song hee
illustrator cho ye ram

 

ⒸNYLON MAGAZINE KOREA 의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Written By
More from NYLON

something new azit

K-패션의 플랫폼 보이플러스의 새로운 보금자리.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