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 백현진

위키백과에서는 백현진을 가수이자 배우, 화가라고 소개한다. 이번엔 그가 가수로서 두 번째 정규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무려 10년 만이다.

이름 앞에 정말 많은 직업이 붙는다. 엄청 산만하게 살고 있는 거다.(웃음)

실제로는 본인 소개를 어떻게 하는 편인가. 언제부턴가 “시각과 청각을 다루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한다.

오늘 촬영한 공간은 화가로서 작업실이라고 들었다. 이 아래층은 자택이자 간단한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올인원 건물이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잠에서 깼다가도 뭔가 생각나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날이 밝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또 내려와서 음악 작업을 하다가 다시 잠들고. 내게 적합한 시스템이다.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나. 생활 공간에서도 계속 일을 하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웃음)

새 음반 <가볍고 수많은>의 크레딧을 보니 직접 설립한 1인 제작사 ‘백마트’가 총제작을 맡았더라. 실명으로 해도 되는데 굳이 ‘백마트’라는 이름을 따로 썼을까 궁금했다. 일종의 소규모 자영업자가 작은 자기의 업장을 꾸리는 건데, 예를 들어 ‘흥남상회’ 이런 게 괜찮지, ‘김길동상회’ 이렇게 대놓고 이름을 적시하는 건 별로다. 뭐 그렇게 자기가 소중해서 회사 이름에까지.(웃음) 지금은 음반만 낸 거지만 여기서 이것저것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 때 ‘백마트’ 정도면 어느 정도 가볍고 괜찮겠더라. 입에도 잘 붙고. 음반 재킷 디자인을 오랜 친구인 ‘모임 별’의 조태상이 했다. 그가 “형이 제작한 건데 레이블이든지 뭐든 아무 거나 이름 하나 만들어서 보내”라길래 뭐가 좋을까 하다 떠오른 단어를 바로 메시지로 보냈다.

이번 음반의 팀 멤버들을 보니, 그전 솔로 음반에서 작업했던 라인업은 아니다. 김오키와 이태훈, 진수영이 연주를 함께했고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은 엔지니어 이성록이 담당했다. 김오키는 개인적으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뮤지션이고, 이전부터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같이해왔다. 그가 하는 여러 팀 중 ‘새턴 발라드’가 있는데 어느 음반 쇼케이스 당시 게스트를 해줬다. 노래는 내가 하고 그들의 팀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어느덧 내 솔로 작업할 때 팀원이 되어 있더라. 라이브 퍼포먼스할 때 이미 그 팀으로 구성되었거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거기에 이 동네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는 소문이 자자한 이태훈이 붙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김오키의 새턴 발라드 더하기 이태훈. 올 초에 새턴 발라드에서 전제곤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이태훈, 김오키, 진수영, 나, 4인 체제가 되었다. 한 명 빼고는 다 마포구 동네 사람이라 걸어서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럼 합주는 자연스럽게 마포구에서 하겠다. 주로 우리 집 거실에서 한다. 여기서 이야기도 하고 연주도 하고. 소리내는 데 큰 제재가 없는 건물이라 그게 큰 장점이다.

거실에서 연주라니 멋지다. 연주자들은 좋아한다. 합주실 가면 특유의 냄새나 분위기가 있는데 나조차도 그걸 즐기지는 않는다. 한창 연주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밥도 해 먹고. 뭐로든 편하다.

공동 프로듀싱을 했더라. 그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 조웅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음반은 조웅 덕이 굉장히 컸다. 일단 나와 연주 팀 아닌 누군가 다른 눈이 있으면 싶더라. 조웅은 내가 뮤지션으로 존중하는 사람이다. 이 친구라면 ‘그가 나에게 쓴소리를 해도 군말 없이 잘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 제안했다. 실제로 조웅이 합류함으로써 음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그가 발휘한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방향을 잡아줬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힘을 많이 뺐는데 그가 그렇게 만들어줬다. 아마 나 혼자 음반을 만들었다면 곡들은 그대로겠지만, 정말 다른 음반이 나왔을 거다.

음반 커버 사진이란 것이 한 컷만 골라야 하잖나. 마치 인천 월미도의 한밤에 볼 수 있는 풍경 같기도 하다. 우연히 이걸로 골랐다. 근데 주변에선 전부 다 반대했다. 다들 “미쳤어?”라고.(웃음)

오늘 우리 모두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밀어붙였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 반응이 너무 안 좋아 ‘그래. 이건 안 써야지’ 하고 놔뒀는데, 더 이상 사진 선택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왔을 때는 꼭 이 사진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더라고. 가만 생각하니 음반에 수록될 곡이라면 이 사진이 가장 적당하겠다 싶었다.

실제로 유원지 같은 곳에서 촬영한 사진인가. 여기 동교동 삼거리에서 우리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인형 매장이다. 그 가게는 영업이 끝났는데도 항상 엄청 밝게 해놓고 문을 닫는다. 그냥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너무 밝고, 너무 귀엽고. 말 그대로 시선을 잡아끄니까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봤다. 보다 보면 너무너무 쓸쓸하다. 그래서 ‘이거 참 되게 묘하네’ 싶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가게는 오늘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거다.

인기 있는 캐릭터, 가령 펭수라든지 카카오 프렌즈 같은 인형이 하나도 안 섞여 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안 찍었을 거다.(웃음)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별 특징이 없는 애들이잖나. 그래서 좋다.

가사를 쓸 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편이라고. 이미지가 올 때도 있지만 낱말이 올 때도 있고 문장이 올 때도 있다. 뭐로든 가사를 쓸 때면 매번 벌어지는 일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머릿속에서 영상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반 줄’을 작업했을 당시엔 김밥 한 줄 사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 20대나 30대 초반의 한 청년이 그려졌다. 그가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까만 봉지를 꼭 쥐고 집에 가는…. 그러면 그걸 가사로 쓰는 거다. 자동으로 연동되면서 나는 기록을 하는 거지.

그 연동되는 이미지를 가사로 표현할 수도 있고,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나. 그림으로는 안 그린다. 그림의 경우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어떤 레퍼런스도 없을 때 손이 간다. 이미지가 있는 걸 또다시 이미지로 번역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지루하다. 부질없는 일처럼 생각되고. 물론 나는 부질없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사실 좀 멍청한 짓인 것 같거든. 그래서 그렇게는 안 한다. 재미없는 일이다.

그동안 ‘어어부 프로젝트’와 ‘방백’의 결과물도 냈지만, 오롯한 백현진의 솔로 정규 음반은 10년 만이다. 그사이 음악가로서 백현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단 사람이 많이 변했다. 같이 연주하는 이들이 바뀌었고. 그게 제일 큰 거 같다.

이 개인 음반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 글쎄,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뭐 대단한 우주나 대자연에 대한 또는 기계에 대한 이런 거 말고 동물 중에서도 콕 집어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방백’ ‘어어부 프로젝트’ 등 솔로 음반도 그렇고, 백현진이 내는 곡은 하나같이 겨울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기분 탓일까? 그러잖아도 ‘찬 바람 불 때 음반을 내야지’ 하는 생각은 했다. 마음 같아서는 매년 이 계절에 음반을 한 장씩 내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과연 모르지 뭐.(웃음)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건 무엇일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가. 모든 사람은 계속 바뀐다. 자연의 일부니까. 나이 먹으며 바뀐 것 중 하나는 분노를 운용하는 시스템이 예전보다는 확실히 안정화된 느낌. 그게 크다. 근데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보통 나이를 먹어가면 진짜 후져지는 것 같거든. 더 탐욕스러워지고. 이건 나도 포함한 이야기다. 다들 나름 열심히 살아가겠지만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점점 그냥 후져지는 거 같다는 생각은 한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저 어른 되게 멋있다’라고 보는 사람은 매우 희박하다.

하기사 나이와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완전.

그럼 나 스스로는 어떤 사람이고 싶나. 현재에서 굉장히 다른 어떤 노인이 되어 있으면 한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 노인을 바라볼 때 사람들이 이 얘기도 하고, 저 얘기도 하겠지? 근데 그건 그들의 몫이고. 나는 어쨌거나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도 곧잘 하고, 더 많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뭔가 또 이것저것 노력할 거다. 그게 내 일인 것 같다. 그러면서 뭐 그림도 그리는 거고, 보이는 것도 다루는 거고, 들리는 것도 다루는 거고. 연기도 어쩌다 하는 거고.

더 많은 인터뷰는 나일론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park ji hyun
photographer yoo young jun
assistant lee jeo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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