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이 가득한 홀랜드

꿈과 사랑이 가득한 홀랜드로 오세요.

니트, 셔츠, 슈즈와 소품으로 사용한 의자는 모두 구찌, 팬츠는 더스톨른가먼트.

톱은 오디너리피플, 스카프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재킷은 메종 마르지엘라, 팬츠는 더스톨른가먼트, 슈즈는 앤더슨벨.

새해에 만나 더욱 반갑다(인터뷰 당일 1월 3일). 연말엔 유럽 투어로 정신없이 보낸 것 같더라. 파리,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무려 5개 도시다. 그전에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다고 들었다. 첫 유럽 투어이기도 하고 기대가 컸다.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는 때 신곡 발매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바쁜 시기가 겹쳤다. 어쩔 수 없이 너무도 바쁘고 예민한 시기를 보냈다.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처음이라 미흡한 부분도 있고 신경을 더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도 있거든.

지난 투어 영상을 찾아보니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더라. 그렇다면 다행인데.(웃음) 기억에 남는 건 공연을 마치고 팬들을 만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내 눈을 보고 ‘고마워’ ‘내 인생에서 너와 같은 사람이 없었어’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더라. 들을 때마다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기분이었다. ‘아, 내가 존재하는 사람이구나’ ‘내 음악이 필요가 있구나’ 이런 걸 확인받는 느낌이어서 너무 고마웠다.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된 거지만 그만큼 화제가 되었던 만큼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에즈라 밀러가 홀랜드의 팬이라고 말한 인터뷰가 많이도 회자되더라. 공개적인 이야기인 만큼 기분은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좋은 기분은 당연하고 에즈라 밀러가 나를 언급해준 것에 대해 굉장히 큰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기록하게 해준 셈이니까. 간접적이지만 그가 건네는 응원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해주세요’로 들리더라.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다. 느낀 건 ‘아, 이 사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인가.(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었다. 본인은 백인의 미국인이고 남자이기 때문에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더라. 남자와 여자라는 젠더로 구별하는 것도 싫고, 이 지구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권 운동을 하고 퍼포먼스를 한다고. 감탄했지 뭐야. 너무 대단한 거지.

환경과 가치관! 만약 내가 태어나서부터 항상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렇게 불평등한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살면 편하잖나. 근데 에즈라 밀러는 거기에 반한 것 아닌가. 그것부터 굉장히 큰 용기고, 난 조금 오버해서 신의 마인드와 가깝다고 생각했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목표점이 같다고 봤으니까. 이렇게 멋진 사상을 가진 사람이 나를 응원해준 거니까 힘이 많이 났다.

그 힘을 가지고 홀랜드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나. 데뷔한 지 곧 2년이 된다. 지금까지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음악을 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색깔을 어떻게 표현할지 오랜 시간 고심해서 나온 작품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작업해왔다. 되돌아보면 발표한 노래에는 그 당시의 나와 마음, 생각이 남아 있더라. 근데 이제는 좀 더 전략적으로 음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종합 아티스트 시대다. 요즘은 경계가 없으니까. 그 끝에 가장 성취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스스로 나니까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K-팝 시장이 이제는 레드 오션 같다.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친구들,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 춤 잘 추는 친구들은 너무 많다. 얼마나 ‘이 신에서 오래 인정받고 살아남느냐’가 내 기준에서는 그 사람이 잘하는 거다. 나는 언젠가 내가 교과서에 나오면 좋겠다. 인권의 문제라든지,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람으로,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싶다. 하나 더 고민하는 것은 아티스트와 아이돌 사이의 간극이다. 어느 순간 하면 할수록 내가 대중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무 마이너적인 내 이야기만 고집한다면 대중에게 내 이야기가 공감을 못 받을 텐데 과연 그것도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로 고민과 궁리를 많이 하고 있다.

노래에 메시지를 좀 더 담고 싶나. 여태까지는 메시지에 대한 집착을 많이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노래는 어때야 하고, 가사도 내가 써야 하고, 뮤직비디오는 누구랑 찍어야 하고, 의상은 어때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가 했다. 이제는 고집을 좀 버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 파트를 좀 나눠 줄 생각인가. 믿을 수 있고 그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볼 계획이다. 2년 동안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차라리 아예 몰랐으면 나았을 텐데 나도 해봤고 아는 부분이 있으니까 남에게 맡기면 만족이 안 되더라고. 하지만 그만큼 또 킵한 에너지를 다른 데 쓰면 되겠더라.

아티스트는 전방위로 보여지는 사람이잖나. 사실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대중 앞에 나서는 직업은 또 다른 차원이니까. 그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내가 데뷔를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성장하면서 나 스스로의 성 지향성을 고민하고, 단순히 게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마다 힘을 준 것이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LGBTQ)에 대해 목소리 내는 음악가들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 내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LGBTQ에 대해 지금보다 더 소극적 자세를 취한 시장이었다. 내가 음악으로부터 힘을 받은 만큼 ‘분명 누군가에겐 나와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야’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음악이나 메시지가 필요한 과거의 나와 같은 이들. 두 번째 이유는 나를 괴롭힌 친구들한테 증명하고 싶었다. 나를 오롯이 다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서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었고 그걸 보여주려는 욕구가 컸다. 너희가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너는 안 될 거라고 했지만 그게 틀렸다는 걸. 상처를 안고 움츠린 채 살아가는 것은 내가 그 애들에게 지는 거니까. 그래서 더욱이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자아실현의 느낌이랄까. 내게는 중요한 동기 부여였고 보다 많은 이들과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면서 실제로 스스로 많이 치유됐다.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은 의미가 있으니까.

자기 PR 역시 다양한 표현으로 나오는 것 같다. IG TV를 통해 음반 소식을 알리거나 크라우딩 펀딩을 하거나. 온라인상에서 소통을 참 잘하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다른 아이돌들보다는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웃음) 내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홀랜드의 개인적 메시지가 아니라 LGBTQ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생길 수도 있고, 대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나를 주목하는 시선도 느껴져 점점 더 조심스럽고 ‘아, 이거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것 같다. 한국은 연예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굉장히 강하잖나. 그럼 ‘나는 그만큼 착하고 깨끗한 사람인가?’ 하고 자문하게 되고. 이제까지 어찌어찌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거든.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사랑을 받는다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데뷔 음반 와 활동명 ‘홀랜드’. 어쩐지 운율을 맞춘 느낌도 나고 ‘Land’라고 지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나. 사실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곡이 먼저 나왔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그때 떠오른 홀랜드가 말마따나 라임도 잘 맞길래.(웃음) ‘Neverland’ 하면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

홀랜드 하면 성 정체성에 대한 타이틀을 먼저 떠올리는 대중이 많을 거다. 한국에선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뮤지션’. 이 한 줄로 이미 강력하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물론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웃음) 다만 그런 건 있다. ‘쟤 가수인데 게이야.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아직까진 ‘게이인데 가수야’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럼 내가 무얼 해야 할까? 좀 더 좋은 음악과 공연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당장에 크게 바뀔 거라고 기대는 안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흘렀을 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그 ‘조금 더’가 쌓이다 보면 기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겠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즉 주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은 유럽이나 미국 쪽이다. 그 나라들 대부분은 인권적으로 굉장히 성숙한 단계에 있다. 커밍아웃한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고 사랑을 베풀어준다. 물론 사회다 보니 그곳에도 차별은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교적 한국보다는 덜하다. 나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인도, 중동, 러시아처럼 성에 다소 폐쇄적인 지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 특히 모국인 한국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고 싶다. 반드시 그러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맞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자신은 없다.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 무섭고 힘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다.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웃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까.

카무플라주 재킷 오프화이트 By yoox, 이너로 매치한 더블 블레이저와 팬츠는 모두 유니버셜 웍스, 안경은 스틸러, 벨트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은 오디너리피플, 팬츠는 소윙바운더리스, 모자, 스카프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더 많은 화보는 나일론 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park ji hyun
photographer yoo young jun
stylist park sun yong
makeup hwang hui jung
hair jang ha jun
assistant lee jeo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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