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크러쉬의 시간

어제와 다른 오늘, 늘 새로운 계절을 사는 크러쉬에게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스웨트 셔츠는 카브엠트, 이너 점퍼는 노스페이스.

벽돌색 풀오버는 Y/프로젝트, 팬츠는 프로페서 E, 하이톱 스니커즈는 나이키.

검정 슈트 셋업과 셔츠는 모두 태우, 워크부츠는 컨버스.

오늘 촬영이 올해의 첫 스케줄이라고 들었다. 음악 작업이 아닌 화보 촬영도 좋아하는 편인가. 이 작업 역시 그때그때의 모습을 기록하는 거니까.

애플 뮤직에 이번 정규 2집 에 대한 소개를 보니, ‘시간의 흐름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크러쉬의 두 번째 음반’이라고 되어 있더라.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뭔가를 기록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 2집 역시 음반으로서 그걸 기록한 셈이다. 결국 모든 디스코그래피는 기록물이 되는 건데, 기록을 직역하자면 레코드니까. 이번에 이 음반을 준비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내 나름대로 매우 섬세하게 기록했다.

음반에 수록된 각각의 12곡에서 크러쉬의 현재와 그때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를 새벽, 아침, 오후, 저녁, 밤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도 크러쉬답더라.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음반을 만들어낸 느낌이다. 일단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한풀이의 느낌인가.(웃음) 콘셉트가 확실한 음반이었다. 이걸 만들고 나니 앞으로 더 실험적이고 과감하게 나가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장르적으로도, 메시지적으로도. 내가 무얼 선택하든 중심을 잃지 않을 힘.

담아낸 주된 이야기는 무엇인 것 같나. 이제껏 발표한 노래의 주제나 가사 내용은 주로 사랑 또는 이별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음반에서는 앞의 것들보다는 나 자신을 향한, 자전적 이야기에 집중했다.

전자적 요소보다는 어쿠스틱 악기가 많이 들어갔더라.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뿐 아니라 브라스까지 적극 활용한 걸 보면서 크러쉬가 좋아한다는 쳇 베이커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어쿠스틱한 음악과 재즈가 베이스를 이룬 음악을 연구하고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많이 받았지 싶다.

연주자는 아니지만 악기를 어느 정도 알아야 이런 곡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노력은 어떤 것이 있었나. 평소에도 음악의 선율, 코드 진행과 같은 걸 깊게 파고들어 연구하는 편이다. 다룰 수 있는 악기는 많지 않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한다.

마스터하고 싶은 악기가 있다면? 나는 모든 악기를 다 연주하는 게 목표라서.(웃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기까지는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밴드 구성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여유 있을 때마다 연습하려고 한다.

요즘 네이버 채널 ‘NOW’를 통해서 한시적 DJ로 활약하고 있는데 선곡 리스트가 너무 훌륭하더라. 6회 차 정도 진행했고 이따 저녁에 마지막으로 간다. 한 번 틀 때마다 30~40곡을 준비해 가는데, 시간 관계상 나가는 건 10곡 정도다. 회차가 짧다 보니 우선 내가 좋아하고 들려주고 싶은 노래 위주로 구성해왔다. 오늘의 히든 트랙은 조지 벤슨의 ‘Turn Your Love Around’다.

제대로 라디오 DJ를 해볼 생각은 없나. 내가 생각해도 난 잘할 것 같다.(웃음) 근데 생각보다 더 힘들다고들 하더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영역이기는 하다. 근데 할 거면 정말 제대로. 라디오 DJ라면 직접 선곡부터 정성을 다해 관여해야지 어영부영할 거라면 성격상 아예 손대지 않는 게 맞다.

<나 혼자 산다>라든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그램에 출현했을 때 어딘가 허당기 있는 청년 신효섭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더라. 자신의 사적인 면이 오픈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나. 나는 아티스트로서 이미지와 실제의 나, 둘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웃음)

1992년생 친구들인 딘, 지코, 밀릭, 페노메코 등과 결성한 팬시차일드 크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대하다. 멤버들이 워낙 잘나가다 보니 이들이 모여 뭘 할지가 항상 궁금한 거 같다. 우리끼리는 그냥 친구들이다. 처음 모였을 때부터 비즈니스를 위한 집단이 아니라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일단 그냥 논다. 며칠 전에도 만났는데 돼지 꼬리에 소주를 진탕 마시고. 그날의 발견은 뭐니 뭐니 해도 돼지 꼬리다. 지호가 하도 맛있다길래 ‘동글동글 말린 돼지 꼬리가 맛있어 봤자지 뭐’ 하고 나갔는데, 와 말이 안 되더라고. 최고의 술안주로 등극했다.

진짜 동글동글 말려 나오나. 한 입 크기로 잘려 나오더라. 그걸 숯불에 구워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족발의 콜라겐 같은 부위가 붙어 있는데 그게 너무 맛있다. 페노메코나 딘, 키드밀리 다 와봤다는데 나만 처음 먹어본 거 있지. 아오. 1차로 돼지 꼬리 안주 삼아 소주 마신 다음 그 옆에 횟집 가서 2차로 소맥을 또 엄청 마셨다. 그때부터 나는 기억이 안 나고.(웃음)

그냥 리얼 친구들이네. 우리끼리 만나면 음악, 미래… 이런 이야기 절대 안 한다. 그냥 “씨, 우리 너무 늙었다. 이제 망했다고.” 이런 소리나 하지.

아니 스무 살들도 그런 말은 곧잘 하잖나. 우리 너무 나이 많다고. 아니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얘기가 안 나왔는데 딱 그제 만났을 때부터 봇물 터졌다. 돼지 꼬리 먹을 때까지는 많이 안 취해서 ‘아, 다들 작년에 수고 많았다’ 같은 이야기 주고받다가 횟집 가서는 우리 이제 어떡하냐고, 망했다며.(웃음)

문득 앞으로도 이렇게 놀면서 재밌는 것들도 하는 이 잘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술자리에서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5년, 10년 뒤에 우리 중 누군가는 음악을 안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구는 애 아빠가 돼 있을 수도 있고…. 그렇더라도 이렇게 만나 ‘아무 의미 없는 얘기나 하자’라고 결의를 다졌다.

정말 친한 친구끼리 주고받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가 최고 아닌가. 맞다. 요즘은 다들 너무 의미 있게만 살아가려고 애쓰니까.

스무 살의 크러쉬와 스물아홉 살이 된 크러쉬 사이엔 과정이 있었잖나. 전부 지나온 지금, 가장 큰 변화는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제일 큰 변화는 겁이 많아진 것. 그리고 좋은 의미로 힘이 좀 빠졌다.

어떤 힘? 여러 가지로. 내가 창작을 하고 음악적인 활동을 하는 데 구력이 좀 더 생겼달까. 지금보다 어릴 때의 열정보다는 덜하고 분명 겁이 많아졌지만 그 대신 노련함이 늘었다.

겁이 많아졌다는 건 도전에 대한 겁일까? 아니, 잃을 것들에 대한.

그만큼 20대에 얻은 것이 많다는 거겠지. 스스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 되돌아봤을 때 아쉬운 건 좀 더 내 냉장고 안에 보관해놓은 음악을 더 발표할걸. 킵해놓은 디스코그래피 이야기다. 근데 이것도 다 욕심이다.

아홉수를 믿나. 그런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된 지 열흘 정도 됐는데 벌써 조짐이 있는 것 같고, 괜히.(웃음)

그 위기가 올지 안 올지 아직 모르지만 만약 온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평소 스스로에게 파이팅이 필요할 때 무얼 찾는 편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선택과 집중’. 모든 일에 이 방식을 대입하는 편이다. 이건 해도 해도 안 되는 거라는 판단이 들면 놔버린다. 포기도 빠르게.(웃음)

스트라이프 패턴 코트는 드리스 반 노튼 by 가버먼트, 팬츠는 얼루프, 네크리스는 크루치,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트는 설밤, 볼 체인 네크리스는 힙노타이즈, 긴 네크리스는 크루치.

더 많은 화보는 나일론 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park ji hyun
photographer yoo young jun
stylist park ji yeon, park sang wook
makeup park so hyun
hair lee hyun woo
assistant lee jeo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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