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의 눈과 말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 박세진의 눈과 말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블랙 톱과 베이지 넥 셔링 블라우스는 모두 비롯, 이너로 입은 니트는 에그, 레드 포인트 드롭 이어링은 일레란느, 실버 네크리스는 모니카비나더.

베이지 오버사이즈 셔츠는 레지나 표, 미디스커트는 비롯, 와인 컬러 플립플롭 힐은 지니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알아보니 이전의 이력이 흥미롭더라. 부산국제외고에 재학 중인 열여덟의 똘똘한 학생이 왜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했을까? 사실 이쪽 일은 살면서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친언니가 나 보고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거다. 권유도 아니고 꼭 나가야 한다고 세뇌를 시켰다. 지금도 언니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웃음)
그 학생이 수상까지 했다. 난다 긴다 하는 수많은 모델 지망생 중 그들은 백지인 박세진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까? 현장에 도착하니 내가 제일 어렸다. 참가자들도 하나같이 나랑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더라. 다들 끼 많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현직 모델도 있었다. 그런데 난 외고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다 왔으니 당연히 런웨이가 뭔지도 몰랐고,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건지, 모든 것에서 어수룩한 거지. 그때는 웃는 방법도 몰랐다. 그런데 어쨌든 내가 학업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왔으니까 무조건 슈퍼모델 타이틀은 따고 내려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밀어붙인 거 같다.
한번 목표를 잡으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인가 보다. 10대 때는 지금보다 심했다.(웃음)
공부를 잘했을 것 같은데 좀 아쉽지는 않았나. 나름 중상위 성적을 유지했는데, 죽어라 한다고 해도 그 위로는  저히 안 올라갔다. ‘타고나는 머리를 넘어서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좌절감이 밀려오더라. 지치기도 했고. 슈퍼모델 대회를 경험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그전과는 다른 것이 보였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 멋있게 해내는 저마다의 삶을 보고 왔기 때문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는 공부가 갑갑해졌다.
근데 모델과가 아니라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던데. 사실 슈퍼모델 대회 준비를 하면서 내 피지컬이 모델과 맞지 않는다는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때 내 키가 168cm였는데 런웨이에는 176cm 이상부터 설 수 있는 암묵의 룰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난 너무 작달막하고. 모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즈음 내가 독립 영화에 잔뜩 빠졌는데 작품을 보면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감정이 증폭되면서 인물이 성장하는 구조와 흐름을 보면서 ‘나도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끌어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와닿았다. 주위에 ‘나 독립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레 연기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제대로 준비하게 되었다.
영화 <미성년>으로 배우로서 박세진의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윤아 역은 무려 500:1의 경쟁률이었다고. 오디션장에 가는 내내 ‘아, 단역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너무도 ‘쌩신인’인 나에겐 가질 기대조차 없었으니까. 근데 몇 주 뒤에 최종 오디션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 전화가 합격했을 때보다 더 감격스러웠다.
윤아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도 그 질문을 나중에 조감독님에게 해봤다. 오디션 영상 테이프를 훌훌 넘기면서 보다가 감독님이 “잠깐만, 얘 눈빛 좋다” 하고 멈춰 세우셨다더라.
눈빛과 느낌으로 사로잡았다는 말 아닌가. 그런 셈인가.(웃음)
연기를 하면서 10대의 박세진을 많이 녹였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처음엔 준비하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감독님이 그냥 뭘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저 ‘너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낄지에만 집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샌가 윤아와 가까워졌다.

블랙 브이넥 드레스는 렉토, 그레이 스커트는 비롯, 오른손 검지 실버 심플 링과 약지 드롭 링은 모니카비나더, 왼손 더블 실버 링은 일레란느.

많은 관객이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복도에서 주리와 윤아가 온몸을 날려 붙는 장면을 꼽는다. 보면서 ‘액션 연습을 부단히 했겠구나’ 싶더라. 한 달 동안 서울액션스쿨에서 맹훈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진짜 머리채 잡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악쓰면서 싸웠고, 그 감정을 기억하게 한 후 그때서야 기술을 얹어주시더라.
근데 그 신, 한 번에 OK 받았다던데…. 이런 신이야말로 두세 번 할수록 체력이 소진되어 더 잘하기 힘들다는 걸 혜준 언니와 나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언니 이건 무조건 한 번에 가자” 했고 언니도 “그래, 나도 제대로 머리채 잡을게”라며 결의를 다지고 들어갔다. 거의 마지막 촬영 즈음 찍은 신이라 이미 언니와의 호흡도 좋을 대로 좋은 상태여서 뭐.(웃음)
그럼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신이 있다면? 마지막에 주리랑 윤아가 웃으면서 끝나는데, 딱히 이유는 없고 그 기분 좋은 분위기와 느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전작인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맡은 부현아는 틈이 없는 변호사였다. 지금 나이 또래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직군이고, 전문직이기 때문에 준비할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정말 어려웠다. 말처럼 일단 실제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다. 대선배인 김혜수 선배님을 비롯해 그 외 다른 선배님들과 붙어야 하는데, 어려 보이면 안 된다고 감독님도 강조를 많이 하셔서 그거에 대한 강박도 있었다. ‘그래, 무조건 멋져 보이자. 최대한 멋지게 연기하자’고 되뇐 것 같다. 나는 지적인 사람을 볼 때 가장 멋있고 또 섹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부현아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그 ‘지적’이라는 것에 방점을 뒀다. 읽히지도 않는 법률 책을 그냥 펼쳐 읽고, 아니면 수첩 같은 데 부러 변호사처럼 ‘팀장님이랑 미팅’ ‘합의서 제출해야 됨’ 같은 메모를 끄적이며 혼자 변호사 놀이도 하면서 몰입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해보니까 어땠나. 변호사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던가. 법률,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렵고.(웃음)

더 많은 사진과 자세한 인터뷰는 나일론 6월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ditor park ji hyun
photographer lee se hyung
stylist gong sung won
makeup you hye soo
hair cho eun hye
assistant lee jeo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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