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voice

2020년을 맞이하는 진짜 미생들의 속마음.

네이버 웹툰 어시스턴트 | 프로 어시스턴트의 길 정00(32세)

이제는 하룻밤 새는 정도는 어렵지 않아졌어요. 언제부터 친했는지 다크서클은 제 곁을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요. 책상 위에는 채색되기를 기다리는 웹툰이 잔뜩 쌓여 있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여유 넘치는 것처럼 SNS에 접속해 신나게 파도타기를 시작했죠. 그런데 왜 보지 말아야 할 것만 눈에 띌까요? 휴가 내고 부산으로 여행 간 친구 말이에요.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해사하게 웃고 있었어요. 괜히 봤다 싶었죠. 그러곤 다시 채색을 시작했어요. ‘나는 불행하지 않다’라고 주문을 외면서. 어쨌든 날이 밝으면 마감을 해야 하니까요. 자고로 연재하는 기간에는 아파도 안 되고, 급한 일이 생겨서도 안 돼요. 그게 바로 프로 어시스턴트의 운명이죠.

 호텔 리셉션 FO 인턴 | 진상 아웃! 김00(23세)

말로만 듣던 그 ‘진상’ 손님을 제가 영접한 날이었죠. 예고도 없이 신용카드를 휙 던지더니 왜 제대로 받지도 못하느냐고 되레 타박하고, 카드 받는 방법을 배워오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상님. 그래요, 놓쳤을 수도 있죠. 배움이 필요하다면 더 배우고 오죠 뭐. 그런데 진상님, 신용카드를 잘 받는 방법은 대체 어디에서 배우는 건가요? 이와 반대로 사소한 서비스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함을 표하는 고마운 손님도 있어요. 오늘도 울컥했지 뭐예요. 두 번째 방문하는 손님이 직접 만든 머핀을 저를 위해 가져왔어요. 왜 얼음은 따뜻한 물로 녹이는 법이라고 하잖아요. 이 천사 같은 손님 덕에 오늘도 진상님을 잊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죠?

SNS 마케팅 인턴 | 아침잠과 맞바꾼 인생 박00(24세)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이죠. 아침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돼요. 싸움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책임감과 성실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거든요. 아침잠이 유독 많은 저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출근과 동시에 온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고, 연예인 인스타그램을 실시간으로 살피는데 가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누구예요? 비록 힘없는 인턴이지만, 콘텐츠를 어루고 달래서 그럴싸하게 뚝딱 만들어낸답니다. 게다가 오늘 업로드한 기사에는 댓글도 많이 달리고, 인기 기사 상위권에도 랭크됐어요. 그래서 오늘도 아침잠은 포기합니다.

패션 포토그래퍼 어시스턴트 | 프로 경험러 배00(28세)

사진가가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고요? 모르시는 말씀.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패션 포토그래퍼가 갖출 소양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애매모호한 명제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죠. 함께 일하는 파트너, 즉 에디터나 광고대행사 AD 그리고 연예인까지, 각각의 기호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든요. 때로는 외국 같은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야 하고, 파트너가 제안하는 의견에 살을 붙여 그럴싸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촬영장 분위기를 원만하게 이끄는 것까지 모두 포토그래퍼의 주된 업무라고 할 수 있어요. 왜 어릴 적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으면 한시라도 빨리 인화해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처럼 방금 찍은 사진의 후반 작업까지 마친 파이널 컷을 왜 그렇게 빨리 받아보고 싶어 하는지. 디지털이 보급화되면서 이 현상은 더 심해졌어요. 기상천외한 합성을 원하는 주문쯤은 이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 정도는 마스터했어요.

대학 병원 의사 인턴 | 어느 장단에 맞춰 춤출까? 이00(29세)

평소와 비교하면 이번 수술 어시스턴트는 그래도 할 만한 편이었어요. 지난주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는 교수님께 엄청 깨졌거든요. 누구나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듯 교수님이 터득한 본인만의 방식이 있었는데, 제가 그걸 알아채지 못해서 사달이 난 거죠. 아니 그러면 미리 가르쳐주시던가요! 교육받은 대로 했을 뿐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 교수님 덕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눈치와 센스라는 사실을요. 문득 10년 후 제 모습을 상상해보니, 글쎄요. 적어도 ‘꼰대’는 되지 않을 거예요. 서툰 인턴에게 다정하게 말도 건넬 거예요. 두고 보세요. 후배들의 신기술까지도 눈여겨보는 ‘따도남’이 될 거니까.

뷰티 회사 해외사업부 인턴 | 아임 파인, 앤쥬? 이00(26세)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건 다 알고 있죠? 그래서인지 국내 뷰티 회사에서도 외국 문화를 차용하고는 해요. 출근하자마자 첫 번째 관문이 기다렸어요. 바로 영어 닉네임을 정하는 거였죠. 이게 뭐가 어렵냐고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팀장님께, 우리 식으로 하면 ‘영자, 안녕’ 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수평적인 조직 문화라는 말은 너무 멋지지만 자꾸 말이 줄어드는 건 왜일까요? 좀 더 당당하게 ‘헤이 수잔, 헬로~!’를 외치고 싶은데, 오늘도 눈이 마주칠까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하는 소심한 인턴이랍니다.

SBS 뉴스국 인턴 | 피로야 가라! 이00(22세)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줄곧 아나운서와 결혼을 하더라고요. ‘나도 한번 해봐?’라는 생각은 했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주변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죠. 하긴 미드 속 <뉴스룸>을 보면 보도국 직원들이 꽤 멋지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 꿈을 꼭 이루고 말 거예요. 그런데 왜 자꾸 눈이 충혈되는 걸까요? 그럼에도 손가락은 왜 이리 바삐 움직이는 걸까요? 눈물은 흐르지만, 꿈을 향해 한발 더 가까워지는 거겠죠? 아, 그래도 이번 주만 잘 견디면 월급날이에요. 물론 제 월급의 50%는 영양제, 피로 해소제 사는 데 쓰이지만, 급변하는 정치·문화·경제 트렌드를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게다가 친구들 모임에서는 제 한마디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번쩍 열더라고요.

패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 마음으로 말해요 박00(30세)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라 함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보다는 사수의 취향을 잘 읽어야 하는 일이에요. 사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재빠르게 스캔해 미리 준비하는 습관과 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수 있는 영민함도 필요하죠. 비록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먼 훗날, 독립 만세를 외치는 날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거든요. 그런데 왜 사수들은 편하고 보기 좋은 일만 하는 걸까요? 수북이 쌓인 옷더미를 밤새 정리하고, 반납하는 일은 왜 어시스턴트만의 몫이냐고요. 가뜩이나 서울길에 서툰데 강남 구석구석까지 홍보 대행사를 찾아다니며, 협찬받은 옷을 반납하는 일은 엄청난 고충이에요. 게다가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추위나 더위와 싸우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이 험난한 어시스턴트 기간을 잘 마치고, 과연 제가 ‘실장님’이 될 수 있을까요?

assistant editor lee jeong min
illustrator ji ha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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